[한동하 건강칼럼] 맛의 건강학 ② 쓴맛(苦味)은 기운을 내려준다

2025-09-25     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인류는 자연에서 음식을 찾을 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었다. 쓴맛은 독의 맛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본능적으로 단맛을 잘 먹고 쓴맛을 먹지 못한다. 그러나 쓴맛에는 양면성이 있다. 모든 쓴맛을 먹는다고 죽는 것이 아니었다. 일부 쓴맛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고, 쓴맛도 정도에 따라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속담이 있다. 이 표현은 중국의 <후한서>에서 유래한 것으로 良藥苦口而利於病(양약고구이리어병), 忠言逆耳而利於行(충언역이이리어행)”라고 구절의 일부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실에는 이롭다라는 의미다.

앞서 말했듯이 쓴맛은 독성분이다. 알칼로이드는 식물에서 가장 흔히 쓴맛을 내는 성분으로 강한 생리활성을 띠면서 과량 시 독성을 띤다.

예를 들면 스트리키닌은 마전자(馬錢子)에서 유래한 쓴맛 성분으로 강한 신경독이 있으며, 니코틴은 담배잎 성분으로 중추신경에 독성을 나타내며, 아트로핀은 독말풀의 쓴맛 성분으로 초과량 시 환각과 독성을 띤다. 또한 퀴닌은 키니나무 껍질의 성분으로 항말라리아제로 약용되기도 하지만 고용량은 독성을 나타낸다.

쓴맛을 띠는 화합물로 글리코사이드가 있다. 이 성분은 특정 식물에서 당이 비당 성분과 서로 결합된 화합물이다. 대체로 쓴맛을 내면 독성을 띠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청산배당체는 무색, 무취지만 특유의 쓴맛이 난다. 보통 살구씨나 야생 아몬드 등에 존재하는데, 대사되면 맹독성 가스인 청산(시안화수소)을 방출한다. 디기탈리스는 강심배당체로 독성이 강하다.

그리고 국화과 식물에는 테르페노이드류 독성이 있는데, 예를 들면 쓴쑥에는 투존이라는 성분이 쓴맛을 내면서 신경독성을 나타낸다. 그리고 페놀과 탄닌류도 대부분은 항산화, 항균 작용이 있지만, 고농도에서는 단백질을 침전시키면서 소화장애를 유발한다.

만약 독성을 띠는 쓴맛 성분이 과량 들어오면 구토를 하고 심한 복통, 설사를 유발한다. 더불어서 종류에 따라서 현기증, 혼미, 발작(경련) 또는 근육경직이 나타나고, 이어서 빠르거나 느린 불규칙한 맥박, 호흡곤란과 함께 의식저하를 보이면서 쇼크 징후를 보인다.

그런데 쓴맛은 일정부분 약리학적인 효과를 낸다. 쓴맛이 약이 된다는 사실은 경험의 산물이었다. 카페인, 테오브로민, 콜히친, 모르핀, 퀴닌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대부분 강력한 생리작용을 지니며 고용량에서는 독성을 띠지만 적당량에서는 약물로도 사용된다. 예를 들어, 커피의 카페인은 각성을 돕고, 고대 말라리아 치료제였던 퀴닌은 진한 쓴맛을 지닌다. 또 식물의 폴리페놀이나 사포닌도 쓴맛의 원천이 되면서 독이면서도 약이 된다.

대표적인 독성을 띠는 약재로 부자와 초오가 있다. 여기에는 아코니틴이라는 강한 독성을 띠는 알칼로이드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서 생으로 사용하면 강한 신경독성, 심장독성으로 심장부정맥, 마비, 호흡정지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한의사들은 법제를 통해서 독성분을 제거해서 약용한다.

쓴맛에 있어서 이독치독(以毒治毒)이란 개념이 적절하게 적용된다. 병을 사기가 점철된 독으로 보고, 그 독은 독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치료에 사용되는 독()은 약()이 된다.

쓴맛(苦味)은 한의학에서 오행적으로 심()에 속해서 심장과 기운이 통한다고 본다. 적절한 용량에서는 염증을 내리고 열을 꺼주고, ()을 말려 주며, 기운을 아래로 가라앉혀 준다. 이완 관련된 약재로 고삼(苦蔘), 황련(黃連), 황금(黃芩), 황백(黃柏), 용담초(龍膽草) 등은 쓴맛이 강하면서도 약리학적 작용도 뛰어나다.

우리 식탁에서 쓴맛을 경험할 수 있는 음식은 의외로 많다. 봄철의 씀바귀, 고들빼기, , 더덕, 도라지는 모두 특유의 쓴맛을 지니고 있다. 커피, 녹차, 카카오, 맥주의 홉도 쓴맛의 대표다. 특히 봄나물의 쓴맛은 겨울 동안 무뎌진 입맛을 깨우고, 몸속 노폐물을 씻어내는 해독의 신호로 여겨졌다.

피곤할 때 사람들은 종종 커피를 찾는다. 커피의 경우는 카페인의 약리적인 작용으로 여길 수 있지만, 쓴맛 자체가 각성 효과를 나타낸다. 단맛을 먹으면 심리적, 신체적인 이완상태를 유도하지만, 쓴맛은 위험의 맛으로 각성과 두려움에 대한 대처, 경계효과를 낸다.

또한 쓴맛은 미각의 균형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봄철 입맛이 떨어졌을 때 쓴맛이 나는 고들빼기나 씀바귀를 나물로 먹었던 것은 단순한 미각적 즐거움이 아니라, 계절에 맞는 몸의 정화와 균형을 위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한약 처방을 보면 쓴맛이 강한 처방들은 주로 열독을 치료하거나 염증을 제거하는 효능이 강하고, 단맛이 강하거나 비교적 무난한 맛은 기운을 보하는 보약이 많다. 그래서 염증을 치료하기 위한 처방을 환자가 쓰다고 해서 잘 먹지 못한다고 쓴맛을 줄이고 단맛을 늘리는 것은 치료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맛이 바로 치료작용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쓴맛도 부작용이 있다. 쓴맛은 지나치면 위장을 상하게 한다. 쓴맛은 과량에서 소화액 분비를 억제하고 입맛을 떨어뜨리며, 장기간 복용 시 기력이 무력해지는 느낌을 준다. 또한 쓴맛은 본래 습열(濕熱)을 제거하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에, 몸이 허하고 냉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해롭다. 예를 들어, 평소 추위를 많이 타고 소화력이 약한 사람이 쓴 약재를 과하게 쓰면 복통이나 설사가 생길 수 있다.

또한 쓴맛은 심장의 기운을 수렴시켜 정신을 맑게 하지만, 과도하면 오히려 마음이 침울해지고 의욕이 떨어지는 경향도 있다. 기운을 아래로 내리는 하기(下氣)작용이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질과 상황에 맞게, 필요한 만큼만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류는 쓴맛을 통해 독을 찾아냈고, 아이러니하게도 쓴맛을 통해 병을 다스리는 약을 찾아냈다. 맛은 어떻게 활용하느냐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 쓴맛은 독이면서 약이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치유의 맛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