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사)한국콘텐츠컨설팅협회 이사장 / 대구과학대학교 방송영상제작과 겸임교수
김도연 (사)한국콘텐츠컨설팅협회 이사장 / 대구과학대학교 방송영상제작과 겸임교수

 

올해도 어김 없이 '한국형 ㅇㅇㅇ' 타령이 등장하고 있다. 올해의 타깃은 단연 '케이팝데몬헌터스(줄여서 케.데.헌)'다. 하필이면 한국의 문화적 요소들을 다룬 작품이라 우리 사회는 더욱 친숙하고 '만만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새다.

이 작품이 한국 작품이 아니라는 건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자본과 유통은 미국의 넷플릭스가 담당했고 사실상 기획부터 제작까지 다 일본에서 한 셈이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케데헌'이 한국 작품이 아니라서 아쉽다'는 주제의 기사가 쏟아져 나왔었는데 요즘은 그런 기사는 자취를 싹 감추고 한류 문화의 위대함과 자부심에 대한 기사 일색이다. 아마도 국내 대기업들이 '케데헌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필자는 '케데헌'을 보면서 문화적 자부심을 느끼기는커녕 이 좋은 것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것조차 일본에게 의지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빈약한 현실이 비극으로 다가온다.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손기정 옹의 기록사진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 작품은 소니픽처스 소속 메기 강 감독의 기획으로 넷플릭스의 자본과 유통·마케팅 역량을 바탕으로 소니픽처스가 제작한 작품이다. 주제가 한국 문화이긴 하지만 한국은 가만히 그들의 선택을 받았을 뿐이고 이 세 가지 주체가 핵심 요인이었음을 우리는 바로 봐야 한다. '제2의 케데헌'이라는 구호 자체는 그럴 듯하지만 문제는 이 세 가지 핵심 요인들을 조명하는 관점에 있다. 

1. 한국형 넷플릭스?

매년 세계적으로 히트한 상품이 나올 때마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한국형 ㅇㅇㅇ' 논의가 또 나오고 있고 정치권에서는 한국형 넷플릭스를 만들기 위해 1조원 규모의 펀드를 만들겠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는 판이다. 물론 '오징어게임' 때도 그랬지만 넷플릭스의 절대적인 플랫폼 파워 앞에서 창작자가 가져갈 수 있는 이득은 극히 작기 때문에 한국형 OTT에 대한 논의가 나오는 건 이해가 된다. 그러나 넷플릭스란 존재는 글로벌 파워와 탄탄한 콘텐츠 라인업 및 수급 체계, 마케팅 역량과 유통라인 등등이 핵심인데 현실적으로 이것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넷플릭스는 1997년에 설립되어 3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고 현재의 아성을 구축하기까지 든 비용은 2002년 상장 이후 공개된 자료만 가지고도 한국 돈으로 200조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지금의 아성을 쌓아 놓고도 사실 이런 저런 고민이 많은 넷플릭스인데 우리는 넷플릭스가 무슨 이름 모를 개발자 고용해서 사이트 하나 비슷하게 만들면 뚝딱 대체되는 줄 아는 것 같다. 그리고 글로벌 플랫폼을 대체하겠다면서 '한국형'이 붙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1조 원이라는 돈은 넷플릭스를 대체하기에는 미미한 금액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너무나 큰돈이다. 맛난 케이크 하나 만들겠다고 공장부터 설립하려는 일에 막대한 혈세가 낭비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넷플릭스 같은 것을 또 만드는 게 아니라 그간 쌓은 경험을 통해 넷플릭스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테크닉이어야 한다.

2. 제작에 대한 투자?

매기 강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이 정도 되는 훌륭한 기획안을 들고 갔는데도 소속 회사인 소니픽처스에서부터 우선 반려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최종 제작을 소니픽처스가 담당한 것을 보면 애초에 이것이 반려된 이유는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혹시 모를 흥행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지지 않겠다는 경영적 판단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기획자는 자본과 유통을 담당할 믿음직한 협력사를 외부에서 유치함으로써 이에 대처했고, 결국 제작을 성사시켰다. 이게 이미 7년 전이었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예술 교육을 받고, 드림웍스 등 세계 최정상 기업에서, '쿵푸팬더' 등 빛나는 포트폴리오를 쌓은 세계적 감독이, 당시 전세계를 휩쓸던 한류 콘텐츠라는 대단한 아이템을 가지고 만든 기획조차도 이러한 난관을 겪었다. 

큰돈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우리는 늘 '리스크'를 고민해야 한다. 콘텐츠의 성패는 단지 기획이 좋아서, 주제가 좋아서, 제작자의 실력이 좋아서 바로 결과가 나오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소니픽처스는 100년 기업 '컬럼비아 픽처스'의 후신으로서 콘텐츠의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경험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콘텐츠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 혹은 리스크 헷징 전략도 철저했을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수많은 의심과 비판과 검증을 뚫어내어야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생기는 게 당연한데 이것을 정부 투자로 돌린다는 것은 오히려 민간자본 특유의 냉혹한 검증 절차를 우회해주겠다는 뜻과 다름이 없다. 결국 정부에서 늘 기준으로 제시하는 이른바 정량·정성 평가 기준을 기술적으로 잘 맞춰 온 회사들에게 혜택은 또다시 집중될 것이고, 결과물도 정부 기관이 제시하는 성과 지표만 선택적으로 달성하고 마는 수준에 그칠 것이다. 

3. 국내 제작자 양성 시스템의 한계

매기 강 감독은 캐나다 '에밀리 카 예술 디자인 대학교(Emily Carr University of Art and Design)'에서 애니메이션 및 영화 관련 분야를 전공했고 주된 이력에는 '스토리 디렉터'가 표기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관련 전공에서 주로 기술력을 가르치는 것과 대조적이다. 콘텐츠의 본질은 스토리에 있고 스토리의 배경에는 인문학과 철학이 있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에서 스토리가 나오고, 그 스토리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비로소 기술력이 개입하고 포맷이 나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콘텐츠에는 인문학이 바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 체계에서는 콘텐츠 관련 전공은 대부분 기술력 중심의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다. 인문학과 콘텐츠 관련 분야는 별개의 전공, 별개의 단과대학, 심지어 종합대와 전문대 등 별개의 교육체계로 관리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 출신 세계적 영화 감독들은 대개 인문·철학 기반인 데 반해 (봉준호 감독 : 사회학과 / 박찬욱 감독 : 철학과 / 홍상수 감독 : 미국 유학) 세계적 기업으로 꼽히는 한국 기업은 기술 기반이다('덱스터 스튜디오', '포스크리에이티브 파티' 모두 VFX 회사). 기획과 제작이 명확하게 구별되어 있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은 인문학 출신이 기획을 맡고 기술 담당 회사를 따로 고용하는 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낳았다. 두뇌와 손발이 따로 노는 격이다.

인문학과 기술력에 대한 통섭의 인재가 필요하다는 부분에 더하여 또 한 가지 감안해야 할 부분은 글로벌 시장과 이에 대한 공조 시스템에 대한 이해이다. '케데헌' 감독인 메기 강은 세계 1위 OTT인 넷플릭스의 역량과 역시 세계 최정상급 제작사인 소속 회사 소니픽처스의 역량을 이해하고, 세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이들에게 어떻게 접근하고 어떤 절차를 거쳐서 협업을 이끌어낼지를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실행하였다. 그외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작은 다양한 협업들이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건 '활용'이지 그 인프라들의 국적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메기 강 감독이 자신의 기획을 실행하기 위해 넷플릭스와 소니픽처스를 '고용'한 거나 다름이 없다. '케데헌'이 '일본형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을 만들어서 협업한 결과가 아니듯 우리도 '제2의 케데헌'을 만들기 위해 '한국형 넷플릭스'가 필요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이러한 글로벌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는 통찰과 여기서 비롯된 판단력이다. 

4. 우리에게 필요한 건 '히딩크'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나라는 명장 히딩크를 영입하는 결단을 내렸다. 신체 스펙은 그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한국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맥을 못 추는 이유를 시스템에서 찾은 묘수였고 명장 히딩크 감독은 이에 완벽하게 부응했다. 그는 유럽의 선진 시스템을 가져와서 우리 선수들을 교육하며 1) 당장의 훌륭한 실적을 냈고 2) 한국 축구의 체질 개선을 가져왔고 3) 그 효과는 영속적으로 남아 한국 축구가 세계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핵심 원동력이 되었다. 이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 콘텐츠가 활용했던 인프라를 일일이 갖추겠다며 하릴없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관점에서 우리의 현실을 진단하고 세계적 인프라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판단력과 추진력을 갖추는 것이며, 이것은 과거 축구계에서 명장 히딩크를 영입한 것처럼 이러한 역량을 가진 인물을 영입하는 데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메기 강 감독을 영입한다고 가정하자. 1) 스스로가 검증된 제작자로서 이번에는 한국 IP로서 훌륭한 실적을 내리란 신뢰가 있고 2)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의 문제점을 진단하여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이 발견될 것이며 3) 이로 인해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이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겪어 그 효과는 영속적으로 남아 K-콘텐츠가 세계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핵심 원동력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메기 강 감독은 출신이 한국이라 한국인들 입장에서도 별 거부감이 없으리라는 부분도 참작할 만하다. 그가 정히 거절한다 해도 어쨌든 세계적 레벨의 제작자들을 영입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안 될 일에 1조원을 쏟아부으려고 생각했던 걸 감안한다면, 마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사우디아라비아 리그에 가는 것처럼 유능한 개인이 마지못해 우리나라에 입국하여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할 수 있을 만큼의 풍족한 연봉 조건과 권한을 주는 것은 그다지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면서 그 효과는 실질적이고, 영속적일 것이다. 

멕시코 문화를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냈던 디즈니의 명작 '코코(Coco)'를 두고 멕시코 사람들이, 혹은 그 유명한 '알라딘'을 가지고 중동에서, 아니면 영화 '킬빌'을 보고 일본에서 주권을 주장하는 경우가 없는데 유독 우리나라는 '케데헌'을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의아하다. 우리의 문화 상품인 '한류'가 세계 시장에서 그만큼 가치가 있음을 발견한 것은 매우 긍정적이지만 어찌 되었든 외국에 의한 것이고 그 결실도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얘기하듯 앞으로 우리의 콘텐츠 주권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기형적인 콘텐츠 생산 시스템을 진단하고 개선하기 위한 더 발달되고 객관적인 '판단력'을 수입해 올 필요가 있다. 국내 인원들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대기업, 방송사, 유통사, 콘텐츠 기업, 유명 제작사 등등 발언력을 가진 이들은 사실 다 인프라 구축의 이해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좋아 보이는 거 다 따라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걸 잘 쓰자. 

 

헬로tv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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