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채식주의자』 속 영혜는 싸우지 않는다.
그녀는 무너진다.
이 작품은 저항의 서사가 아니라, 자기 소거의 기록이다.
채식 선언은 식단의 변화가 아니다.
현실과의 단절이다.
그녀는 육식을 거부했고, 가족과 말을 끊었다.
꿈속의 ‘피 묻은 헛간’은 말로 풀어낼 수 없는 상처의 표식이다.
후반부에서 영혜는 “나무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는 은유가 아니라,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녀는 먹기를 멈추고, 햇빛을 받고, 물을 기다린다.
자신을 서서히 토양 속으로 흩트리는 길을 택한다.
가장 느린 속도의 자살이다.
많은 해석이 이를 여성 해방으로 읽지만, 그 끝에 남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목소리는 사라지고, 체온은 식으며, 관계는 증발한다.
정치와 윤리가 닿을 수 없는 자리, 존재가 지워진 공허다.
『채식주의자』는 그 사라짐을 끝까지 지켜본다.
한 인간이 언어와 관계, 그리고 자기 몸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순간을 붙든다.
남는 것은 살아 있으나 존재하지 않는 얼굴이다.
그 표정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과 함께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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