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지회사 팀장으로 일하던 가장이 어느 날 외국계 회사의 인수 이후 구조조정 대상이 되어 실직하게 된다.
수도권 교외에 2층짜리 고급 주택에서 아내와 중학생 아들과 유치원생 딸과 함께 꾸려가던 윤택하고 단란한 생활은 그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재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해 보지만 여의치 않다. 종이 만드는 일에만 25년을 바친 그에게 다른 직업은 불가능하다. 오로지 펄프맨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최고의 제지회사에 재취업하는 것이 목표다. 그렇지만 아무리 전문성이 있어도 나이 든 그를 뽑아주는 회사는 없다.
그러다가 꾀를 내어 가짜 구인공고를 내고, 이력서를 낸 제지회사 경력자 가운데 자신보다 경쟁력이 높은 두 사람을 추려낸다. 제거 대상이다. 또 하나의 타깃은 이미 잘 나가는 제지 전문가.
주인공 이병헌은 혼잣말을 읊조린다.
“저 사람이 사라지면, 그 자리는 내 것이 될 수 있다.”
이병헌은 월남전 참전용사였던 아버지의 유품인 권총으로 이들을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실업 후 수입이 끊기자 이곳저곳에서 독촉장이 날아들면서 아내 손예진은 저택을 팔기로 한다. 테니스 강습도 중단하고 결혼 전 하던 치과 간호사 일도 다시 시작한다. 기르던 애견 두 마리도 친정 부모댁으로 보낸다.
멀리 보낸 애견을 되찾고, 어릴 때 살던 집을 남에게 내주지 않고, 다시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찾기 위해 이병헌이 선택한 것은 살인이었다. 경쟁자 제거. 경쟁자들을 죽여야 자신이 다시 일자리를 되찾을 수 있고 행복한 가정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금 전쟁을 치르는 거야.”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고 다시 원래의 삶을 되찾는 건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전쟁일지 모른다.
그가 죽인 첫 번째 경쟁자 역시 실직 제지 전문가였다. 직장을 잃고 허구한 날 술에 찌들어 음악만 듣던 그는 카페를 차리자는 아내의 말을 일언지하에 끊어낸다. 수십 년 했던 일,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말한다.
“실직당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실직당한 후에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한 거야.”
경쟁자 3명을 살해하고 난 후 이병헌은 그의 뜻대로 제지회사에 재취업하게 된다. 회사는 인공지능에 의해 모든 것이 자동으로 돌아가는 회사로, 팀원도 없다. 출근 첫날 기뻐 날뛰는 가장 이병헌, 그가 마주한 것은 종이를 만드는 거대한 로봇뿐이다.
경찰의 수사망에서도 벗어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병헌의 마지막 대사는 그가 좋아하는 재질의 종이에 다음과 같이 타이핑된다.
“어쩔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어.”
영화는 가족의 삶을 책임 진 가장의 무거운 어깨, 무한경쟁사회에서 상대를 없애지 않으면 나와 내 가족이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되는 현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것 자체가 전쟁이라는 사실, AI의 등장과 첨단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설자리가 점차 좁아지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것이 하필 살인으로 이어지는 설정은 유감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중년 가장들의 고뇌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점에서 공감을 자아낸다.
그러나 묻고 싶다. 과연 그 방법밖에 없었는지, 진짜로 어쩔 수가 없었는지. 왜냐하면 나를 포함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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